임신을 확인하고 불안한 마음을 달래려 시작한 소설 읽기. 원래는 벽돌책 위주로 읽을까 싶었지만,
쉽지 않다. 너무 길고 ㅎㅎ 입덧과 병행하기 어렵다.
눈앞이 흐려지고 졸려서 꼭 읽으면서 자꾸만 다시 앞으로 돌아가게 되는 매직. 진도가 좀처럼 나가지 않는다.
그래서 우선 뭐라도 읽자는 마음으로 쉽게 손에 잡히는 책부터 읽기로 마음먹었다.
지난 번 박상영 신작에 이어서 이번에도 비교적 따끈한 신간의 앤드루 포터의 <상상 속의 삶>을 읽었다.
앤드루 포터 (Andrew Porter)
단편소설집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과 《진심의 여백》으로 잘 알려진 미국의 소설가.
종이책보다 밀리의서재를 자주 보게 되는데, 그 때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이 재밌겠다 싶었는데
어쩌다 보니 ‘상상 속의 삶’을 먼저 읽게 됨.

번역서임에도 불구, 너무 술술 잘 읽혔다. 영미소설을 오랜만에 읽어서 그런가? 소설을 읽은지 넘 오래라 우리나라
번역기술이 그 사이 발전한건가?
30대엔 소설을 거의 안 읽었다. 생계가 바쁘고 정신없고, 솔직히 세상 돌아가는 모양새가 현타도 좀 와서 자기계발서, 경영경제서 위주로 독서만 했던듯.
그래도 임신을 했으니 아기 태교에 좋을까 싶어서 이젠 소설 좀 읽어보려고 한다.
40대 산모에게 가장 손쉬운 태교는 ‘독서’뿐이야…ㅠㅠ 미안해 아가야

주인공 ‘스티븐’은 와이프와 아들을 둔 평범한(?) 대학 강사인데, 어머니의 죽음, 와이프와의 별거를 계기로 자신의 어린시절을 파헤쳐 가며
자신과 화해하는 이야기다. 스티븐의 아버지는 대학 정교수 자리를 위해 노력하는 동성애자로, 어떤 이유로 교수자리가 요원해지고,
인생이 어긋나면서
아들인 스티븐과 아내를 버리고 잠적한다.
오랫동안 찾지 않았던, 생사여부를 모르는 아버지를 찾아 떠나는 중년남성의 이야기인데
책 속에서 그려지는 주인공은 여전히 10대 남성이다.
결국 요양원에서 쓸쓸히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아버지를 찾게 되면서 소설은 화자인 스티븐이 화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버지는 자신의 정신병으로 인해 아들과 와이프 곁에서 떠나 세상으로 부터 숨어버린 것이었다.
어찌보면 지난번 읽었던 박상영 작가의 신작 <지푸라기 왕관을 쓴 여자>랑 비슷한 면도 있다.
자신의 어린시절을 찾아가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그리고 부모, 가족이란 존재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는 점에서.
스티븐은 결혼도 하고 자식을 낳았지만 여전히 10대의 어느 순간에 머물러 있는 어른.
한 인간의 성장과정에서 부모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 보게 되는 소설이었다.
과거의 자신과 화해하지 못하고, 그 때를 이해하지 못하고 나면 사람은 성장할 수 없다.
혼자 오래 살다 가정을 꾸리고 이제 곧 아기를 보게되는 내 입장에서도 여러 생각이 많아졌다.
그리고 내 어린시절도 떠올리게 됐다.
어떤 부모가 되어야 할까? 책장을 덮고 고민이 깊어지기도 했다.
결국에 자녀는 또 누군가의 부모가 되어 부모를 이해하게 되는
때가 온다지만 말이다. “너도 자식 낳아보면 알거다.”라고들 하지 않나.
그 떄가 너무 늦은 때라면 의미가 있을까? 너무 늦게 알아버리는 건 그렇게 좋은 것 같지는 않다.
상처 없이 크는 아이는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적어도 내 자식이 부모에게서 만큼은 잔기스와 상처를 받지 않고 자랐으면 하는 마음인데
그게 가능할까? 여러 생각이 스쳤다.
그리고 내가 ‘잃어버린 사람들’에 대해 생각했다. 떠났지만 떠나지 않은 사람들.
이 생에서의 인연이 다해도 여전히 내 안에 남은 사람들.
우리 마음속에서 사람들은 즉시 죽지 않고 어떤 삶의 기운에 잠긴 채 남아 있는데,
그것은 진정한 불멸과는 관련이 없지만 이를 통해 살아 있을 때와 같은 방식으로 계속해서 우리의 생각 속에
머문다. 마치 그들이 해외여행을 떠난 것처럼.
상상 속의 삶 , 앤드루포터


미국 소설가가 썼다는 점에서 감정선의 표현이 남달랐다. 어느 나라든 부모-자식이라는 관계에서 오는 감정은 공통적인 부분이 있지 않나 싶다.
소설 읽기에 조금씩 재미가 붙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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